피서지 가루이자와의 탄생
현재는 피서지·관광의 마을로 알려진 카루이자와. 그 탄생의 계기를 알고 있을까.
피서지로서의 카루이자와의 스타트는 1886년(메이지 19년), 캐나다 태생의 선교사 알렉산더 크로프트·쇼씨가 당지를 방문해, 그 아름다운 청징한 자연과 기후에 감탄해, 가족, 친구들에게 그 훌륭함을 추천해, 그 여름 이 땅에 피서에 방문한 것이 최초라고 말해지고 있다. 메이지 21년에는 구가루이자와의 오츠카야마에 간소한 별장을 세우고, 내외의 지명인에게 카루이자와가 보건과 학학의 적지로서 소개했기 때문에, 쇼씨의 친구인 선교사의 별장이 해를 짓고 세우기 시작했다 . 그리고 메이지 26년에는 첫 일본인 소유의 별장도 세워졌다.
쇼와 그 친구들의 손에 의해 피서지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가루이자와는 같은 해 개통된 우스이 신철도로 인해 그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또한 피서지 가루이자와의 초기에는 외국인 선교사나 그 가족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마을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가루이자와를 영원히 밝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주민들에게도 ‘시간과 약속을 지킬 것, 거짓말을 하지 말 것, 생활을 단순하게 할 것 ……’ 등을 당부하며 이를 장려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선량한 풍속을 지키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자’는 고결한 정신이 피서지 가루이자와의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관통하는 ‘가루이자와 헌장’의 근간이 되어 가루이자와를 지탱해 왔다.
또한, 이 선구자들은 가루이자와를 국제적인 피서지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역 농민들에게 맑은 땅에 맞는 고원 채소(양배추, 배추)의 재배법을 가르쳤다. 이들 양배추 등은 아사마 고원의 청정한 기후와 풍토에 적합했기 때문에 그 생산량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고, 이전의 메밀, 수수 등 잡곡류 생산의 소박한 농업에서 오늘날과 같은 고원 채소로 전환되었다. 특히 상추 등 가루이자와 고원 채소는 독특한 풍미를 지닌 그 품질이 크게 평가받게 되었다.
피서지 가루이자와의 발전
이제 피서지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카루이자와.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를 거듭해, 메이지 30년 무렵에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대별장이나 호텔이 영업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이쇼의 초기에는 하코네 토지(현재의 프린스 호텔)·가시마 건설·노자와조 등의 대형 자본에 의해 토지 분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가루이자와 중심이었던 별장지가 남쪽으로 서쪽으로 개발되어, 특히 제1차 대전 후의 호황의 영향을 받아 일본인 유산 계급의 사람들이 왕성하게 방문하게 되어 부터는 일본인 피서객이 외국인을 웃도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피서지 가루이자와의 양상은, 외국인 선구자들이 만들어 온 질소로 고결한 피서지로부터, 일본인적인 화려한 별장지로 바뀌어, 이러한 일본인 피서객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각종 상점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가루이자와의 중심인 구가루이자와 상점가는 ‘가루이자와 긴자’라고 불릴 정도의 활기차고 있다. 이 무렵에는 골프장, 테니스 코트, 승마 등의 스포츠 시설도 잇따라 신설되어 피서지로서의 기능도 거의 현재의 원형으로서 완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저한 변용 안에도, 카루이자와 헌장의 정신을 지켜 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강고해져, 카루이자와를 이 세상의 성지로 하려고 하는 목적으로부터 「가루이자와 피서단」이 결단 설립되어, 그 목적 에 따른 각종 계몽과 여러 활동이 전개되었다.
전후부터 가루이자와
가루이자와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후 가루이자와의 호텔과 고급 별장 등은 주둔군의 휴양시설로 수용되어 한동안 기지적 양상을 띠었다. 이에 마을 당국과 별장 거주자들이 협력하여 ‘청정 가루이자와’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고, 1951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춘 단속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국제 친선과 국제 문화 교류를 활발히 하여 세계 영구 평화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또한 문화 관광 시설을 정비하여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일본의 경제 부흥에 기여하기 위해 같은 해 ‘국제 친선 문화 관광 도시 건설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또한 쇼와 28년에는 재일 미군의 센겐산 훈련장 설치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과 별장객에게 호소하고 현내 각 단체의 강력한 지원 아래 훈련장 절대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동경대 지진연구소에서는 ‘관측에 지장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실지 조사 결과 ‘학문과 자연을 지키자’는 운동이 성과를 거두어 취소되었다.
그렇게 쇼와 27년에는 여름 피서뿐만 아니라 겨울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을 내 다섯 군데에 스케이트장이 신설되었다. 사설 링크도 곳곳에 만들어지고 은반호 스케이트 열차, 스케이트 전용 버스 등이 운행되면서 겨울철 관광의 각광을 받아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전일본, 전국체전 스케이트 등이 개최되어 쇼와 38년에는 50만 명 정도의 스케이터와 관광객이 방문하며 스케이트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일본 경제의 급속한 회복과 고도 성장의 영향을 받아 생활 환경이 정비되어, 레저 지향의 고조나 자가용 차 등의 교통기관의 발달도 함께, 보양을 위한 별장 이용과 병행해 회사나 학교의 기숙사, 민박 등도 지어졌으며 보건 휴양과 스포츠(사이클링, 테니스, 골프 등)를 즐기는 사람들이 널리 이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피서지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스포츠 도시로서의 성격을 띠고, 나아가 문학적인 요소를 갖춘 구 우스이 고개 전망대, 운장 연못, 시로이토 폭포, 시오자와 호수 등 주변 관광자원의 정비와 도로 정비 등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최근의 카루이자와
‘녹색과 태양과 맛있는 공기의 가루이자와’, ‘상쾌한 가루이자와’를 캐치프레이즈로 여름의 가루이자와에서
사계절 내내 ‘건강 휴양지’로서 환경정비, 문화시설, 스포츠 시설의 정비 강화, 그리고 관광 이벤트 등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자연보호에도 힘쓰고 있는 가루이자와는 면적의 절반 정도가 국립-국정공원 안에 있으며, 웅장한 아사마산의 모습 아래 봄에는 고부시, 낙엽송의 부드러운 새싹,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가을에는 금빛으로 물든 금빛 산들, 다람쥐의 귀여운 모습, 겨울에는 북유럽을 연상시키는 순백의 눈으로 반짝이는 전나무 숲 등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수빙 등 사계절의 아름다움에서 가루이자와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가루이자와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1972년 ‘자연보호대책요강’이 제정되어 자연보호, 쓰레기 처리, 수자원 보호 등의 환경보전 대책과 문화재 보호 대책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마을의 사회자본 확충의 일환으로 호리타츠오 문학기념관, 도서관, 자료관, 오분슈쿠 향토관, 병원, 중앙공민관, 노인복지센터, 사회체육관, 풍월공원 운동장, 식물원, 공원시설, 레크숲(캠핑장 등), 새의 숲, 자연산책로, 자전거도로와 도로망 등 공공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확충되어 ‘국제친선문화관광도시’로서 한층 더 세련되게 발전해 나갔다.
1975년경에는 가루이자와 내 테니스 코트가 천면 이상에 이르렀고, 테니스, 사이클링 붐이 일어나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한, 1998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는 컬링 경기가 가루이자와에서 개최되어, 1964년 도쿄 올림픽 종합 승마 경기 개최에 이어 하계, 동계 두 번째 올림픽 개최지가 되었다.
또한 ‘조신에츠 자동차도’와 ‘나가노(호쿠리쿠) 신칸센’ 등의 정비와 함께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더욱 가까워진 현재, 가루이자와를 거주지로 하는 사람들과 주말에 가루이자와에서 휴양하는 별장객도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을 수용하는 호텔, 료칸, 민박, 펜션 등의 숙박시설도 다양해지고 있다. 방문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콘텐츠의 충실을 꾀하고 있다.
관광 행사로서, 봄의 「와카바 축제」, 여름의 「쇼 축제」, 「시나노 추분 마자 노래 중」, 가을은 「단풍 축제」 개최해, 제30회를 고비로 명칭을 「가루이자와 윈터 페스티벌」로 해, 「화이트 크리스마스」 「발렌타인」의 일루미네이션 이벤트를 중심으로 개최하고 있다.
현재의 가루이자와에는, 피서지나 스포츠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광 행사에 방문하는 분을 시작해, 저명한 작가, 시인, 화가에 연관된 문학 산책을 목적으로 하는 쪽이 방문해, 여름은 매우 붐비는 한편, 방정객의 통년화도 진행되어 인구 약 1만9천명의 마을이 여름의 최성기가 되면, 그 10배나 넘쳐 올라, 연간 입입객은 800만명에 이른다.
또한 최근에는 가루이자와에서 결혼식을 올리거나 자연과 친해지려는 사람들, 수학여행 등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가루이자와 마을 주민헌장’을 마을의 이념으로 삼고 ‘국제친선문화관광도시’에 걸맞게 푸르른 마을을 유지하며, 세계가 자랑하는 청정한 환경과 풍속을 지키며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