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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이자와를 알다

About Karuizawa

카루이자와 무카바시 없음

카루이자와의 전설

~우스이 사다미코의 힘을 시험하는 돌
전국시대의 무장 우스이 사다카미츠(후에 오에산의 귀신 퇴치로 유명한 겐류미츠의 사천왕 중 한 명)는 우스이 고개의 산속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는 아라도코 또는 아라타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 이름처럼 어려서부터 큰 힘을 자랑하며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았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 돌이다.
~운장의 큰부리멸치
옛날 운장 연못에 큰곰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연못가의 버드나무에서 쉬고 있다가 어느새 졸음이 쏟아져 졸고 있는데, 미녀가 와서 실을 걸어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연못에서 나와서 실을 걸었다가 다시 걸었다가 하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놀란 미녀는 그 실을 버드나무에 조심스럽게 걸어놓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실이 겹겹이 걸려 하얗게 변하자 역시나 큰 나무도 뿌리째 뽑혀 순식간에 연못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다.
~까끌레리
이산 정상 남쪽 경사면 가파른 곳에 ‘까끄레리’라는 동굴이 있는데, 옛날에 큰돈을 모은 의적이 살면서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까끄레리’ 동굴은 박쥐의 둥지가 되어 있는 듯하다.
~원근법(오치코치)의 마을 ~ ~원근법 마을
옛날, 센겐 산기슭 일대는 일곱 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계곡마다 조금씩 사람이 사는 집들이 넓게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원근의 마을’이라고 불렸다. 재원업평이 이 마을을 지날 때 ‘신노의 센마 산에 서 있는 케부리오치코치인의 미야하토카메누’라는 노래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웃음의 언덕
추분에 이모리 여인들이 많이 모여 북적거릴 때, 인근에서 놀러 온 젊은이들이 많았다고 하며, 오요다에서 인적이 드문 외로운 길을 올라가 이 언덕에 이르면 붉게 물든 추분의 하늘이 보이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와 ‘자, 여기가 추분이다’라며 지금까지의 차림새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너무 기뻐서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와타우즈메(와타우즈메)~~ 면매(綿埋)
고주쿠-챠슈쿠의 북쪽에서 서쪽에 걸쳐 미카게용수가 흐르고 있다. 이 석축 4 4에 처음 물을 흘려보낼 때 지금의 와타 우즈메까지는 잘 흘러왔지만, 거기서부터 물이 새서 흐르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 물을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여기서 연극을 해서 많은 사람을 모으면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낼 것이다’라는 생각에 연극을 했다. 그러자 과연 ‘아깝다, 여기까지 물이 흘러오는데 솜을 묻으면 물이 흐를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솜을 묻자 물이 잘 흘렀기 때문에 그곳을 솜을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가라부치
스기우라에서 오오분으로 가는 길에 가쓰라부치라는 이름의 좁은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옛날 “가발”이라는 이름의 오오분의 유녀가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오오분 숙소의 구루와에서 도망쳤으나, 추격자에게 쫓겨 결국 이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연못입니다. 입니다.
~가마가淵~釜が淵
도리이하라에서 발지로 가는 길에 유천에 영구 다리가 놓여 있다. 이것이 가마가연교이고, 이 아래를 가마가연이라 하는데, 옛날 이 부근에 마음씨 좋은 카파 한 마리가 살았다고 한다. 혼례나 장례식 때 식기가 부족할 때 이 갓파에게 부탁하면 항상 부담 없이 넉넉하게 많이 빌려주었는데, 어느 날 빌린 식기를 망가뜨리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돌려준 사람이 있어 그 후로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유이(유이)의 카라스메이진 신사
일본에 세 곳 밖에 없는 고마운 신? 까마귀 명신을 모신 작은 호코라가 유이 지구에 남아 있다. 사마귀 등의 돌출물이 생겼을 때, 이 명신의 돌로 두드리면 깨끗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명신이다. 그러나 그 보답으로 빌린 돌의 몇 배를 돌려주지 않으면 떨어졌어야 할 사마귀가 다시 생긴다는 신기한 돌이기도 하다.
~금빛 관음보살(삼과관음)~~ 삼과관음~~!
삼과지구의 관음보살의 유래에 얽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동네 아이들이 산에 풀을 베러 갔을 때 풀밭에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찾아보니 키가 약 10cm 정도 되는 금으로 만든 관음보살이었기 때문에, 스기우라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본존으로 모시기 위해 그 자리에 당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해졌지만 당시에는 신앙하는 사람이 많아 사쿠다이라 일대의 각 지역은 물론 멀리 군마현 다카사키, 간라쿠군 등지에서 와미고개를 넘어 참배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 사두달에는 항상 세뱃돈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이 금관음상을 훔쳐서 전당포에 맡긴 사람이 생긴 뒤로는 참배객이 언제부턴가 없어졌다고 한다. 금관음은 사라졌지만, 관음님은 지금도 삼거리 지역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발치 로미시야(……)~ 발치 로미시야
옛날 가루이자와의 남쪽에 위치한 발치에는 일곱 개의 절과 여덟 개의 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간보 2년에 유례없는 대홍수가 이 지역을 덮쳐 이 일곱 개의 절과 여덟 개의 당, 그리고 모셔져 있던 인왕사(仁王様)도 물에 떠내려갔고, 그래서 지금도 센마쿠라강 하류에서 ‘발지코시야, 돌아왔구나…’라고 울부짖는 인왕사(仁王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인왕신에게 이 발상지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오시다테야마
겐류조(源頼朝)가 부하들을 데리고 아사마 산기슭에 사냥을 하러 왔을 때, 그가 매우 귀여워하던 매가 도망쳐 해발 1,102m의 오시타테산(押立山)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이후 이 오시타테산 일대에 매가 매우 번식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런 이유로 수매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묘가이와(妙峨岩/묘가이와/명가암)
미나미카루이자와에서 발지 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를 묘가암이라고 하는데, 구비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절의 주지스님이 황금이 많이 묻혀 있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바위에 파묻었다고 한다. ‘해돋이 해 지는 동안 황금 천 냥 이천 냥, 후세에 여러 사람이 파헤쳤으나 아무도 캐내지 못했네’라는 노래가 전해진다.
~마토리 가야(馬取萱)~馬取萱(우마토리가야)
겐류조는 무예를 연마하기 위해 아사마 산기슭에 자주 사냥을 하러 왔다고 한다.
어느 날 사냥을 하던 중 우연히 애마가 누군가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는데, 가야의 깊은 수풀에 들어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말을 잡았기 때문에 이 이름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큰 남자 대람보
구름을 뚫고 아사마산(浅間山)을 한 몸에 걸터앉을 정도로 큰 남자가 이 땅에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큰 남자는 매일 멧돼지를 잡아 바위를 가마솥 대신에 삶아 먹었다고 하며, 야가사키산 정상 부근에 있는 가마솥을 닮은 바위가 그 흔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가루이자와의 ‘물가’로 친숙한 운바 연못은 이 대인 데란보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큰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이 뭔가 유머러스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귀신의 눈동자’를 가리키는 이야기
매년 1월 섣달 그믐날이 되면 가루이자와 부근에서는 도깨비가 각 집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딸이 있는 집을 보고 있다가 3월 초파일에 가장 아름다운 딸을 납치해 가기 때문에 섣달 그믐날에 큰 만두(도깨비 눈알)를 세 개씩 꼬치에 꽂아 방에 꽂아두면 도깨비가 와서 놀라서 “내 눈알은 두 개인데 사람의 눈알은 세 개다”라고 말하며 도망가거나 빗으로 찔러서 꽂아 놓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 눈알은 두 개인데 사람의 눈알은 세 개다’라고 말하며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3월 3일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딸의 모습을 흉내 내어 장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사의 행차
영주님이 행차하실 때는 관청에서 연락이 와서 숙소의 사람들은 각자 자기 구역의 도로를 관리하게 되어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왕의 행차가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몇 만석이나 되는 대군이 지나갈 때는 도로 위 청소는 물론 각 집 앞에 새 모래를 가져와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로 한가운데에 폭 1m 정도로 깔고, 또 각 집 대문 앞의 적당한 곳에 두 개의 모래를 쌓아 경의를 표하고, 마을의 관리는 가마 예복을 입고 숙소 외곽까지 마중을 나가고, 아이에게 1m 정도의 막대기를 들고 ‘선불’ 를 들고 ‘선납(先納)’을 하게 하고, 이어서 마을 관리나 본진의 주인 등이 안내를 하고 일반 마을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어 집 안에서 엿보는 등의 행위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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