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의 문학자
1886년(메이지 19) 이후, 카루이자와가 표고 1000m에 있는 고원의 피서지로서 발견되고 나서 120년 남짓이 경과했지만, 그동안, 카루이자와에는, 수많은 문학자가 방문해, 창작 활동을 실시해, 독특한 문학적 풍토를 뗄 수 있었다.
여기서는 그런 가루이자와 인연이 깊은 문학가를 소개한다.
초기에는 모리오카 외(모리오우가이)나 마사오카자규(마사오카시키) 등이 도보나 마차 철도(말이 당기는 철도)에서 아오이 고개를 오르고 카루이자와를 방문해 인상기 등을 남겼다.
1893년(메이지 26년), 난공사였던 요코가와-가루이자와 간 우스이선 압토식 철도(전기기관차)가 완성되면서 많은 문학가들이 가루이자와에 오게 되었다.
도쿠토미 로카(徳富蘆花),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코지마 우스이(小島烏水),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사토미톤(里見弴), 고우지한(幸田露伴), 와카야마 마키스이(若山牧水), 토키 젠마로(土岐善麿), 시마기 아카히코(島木赤彦) 키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등이다. 이들은 주로 여행자로 머물며 그 풍광을 수필과 기행문으로 그렸다.
1910년대, 다이쇼(大正)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많은 문인들이 가루이자와를 찾게 되었다.
마사무네 백조(正宗白鳥)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1912년,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郎)와 타고르(タゴール)가 1916년,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가 1920년에 각각 가루이자와를 처음 방문했다.
그 외에도 스즈키 미에키치(鈴木三重吉), 하기하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 시마자키 후지무라(島崎藤村),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요사노 테츠칸(与謝野鉄幹)-아키코(晶子) 부부,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広子), 호리 다쓰오(堀辰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토우노 유스케(土土 芥川龍之介(芥川龍之介), 土井晩翠(土井晩翠), 谷崎潤一郎(谷崎潤一郎), 山本有三(山本有三), 吉田絃次郎(吉田絃二郎), 丸岡明(丸岡明)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가루이자와 호텔(현존하지 않음), 만페이 호텔, 츠루야 료칸, 미카사 호텔, 호시노 온천, 유야 료칸 등에 머물거나 별장을 빌려 여름을 보내며 가루이자와를 무대로 한 작품도 남겼다. 가루이자와가 가진 청량한 공기와 살롱 같은 분위기, 국제적인 피서지의 이질적인 공간이 문학가들의 작품 창작에 자극을 준 것 같다.
또한 아리시마 다케로(有島武郎), 야마모토 가나에(山本鼎), 오키노 이와사부로(沖野岩三郎)와 같이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가진 문학가・예술가도 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쇼와 시대의 문학자
1920~1930년대, 쇼와 초기가 되면, 스스로의 별장을 세우거나, 또 외국인 소유의 별장을 구입하거나 하는 문학자도 점점 늘어난다.
예를 들어, 무로오 사이세이는 1931년(쇼와 6년)에 별장을 다이즈카야마에 신축하고, 이후 사망하기 직전까지 매년 여름 약 2개월간을 보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31년(쇼와 6년)에 처음으로 가루이자와를 방문했고, 1937년(쇼와 12년)에는 사쿠라노가와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을 구입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지냈다.
호리 다쓰오는 1923년(다이쇼 12년)에 처음으로 가루이자와를 방문한 이후, 아사마 고원의 풍광과 서양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1941년(쇼와 16년)에 가마노사와의 미국인 별장을 구입하여 10년 정도 병상 생활을 하다가 1953년(쇼와 28년) 5월에 가루이자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외에, 제2차 대전전에서는, 오스기 천외(코스기 텐가이), 테라다 토모히코(테라다 토라히코), 마쓰네 토요성(마츠네토우요죠), 사이토 시게요시(사이토모키치), 노무라 후도(노무라코도) ), 하세가와 신 (하세가 와신), 노가미 야요코 (노가미 야에코), 스기우라 쇼코 (너무 우라 스이코), 오리구치 노부오 (오리 쿠치 시노부), 키시다 쿠니 (키시다쿠니오), 요시카와 에이지 ( 요시카와 와이지), 오자키 키하치 (오자 키키 하치), 다나카 후유지 (타나카 후유지), 코지마 마사지로 (코지마타 사지로), 카타오카 테츠다이라 (카타 오카 테페), 아사하라 로쿠로 (아사하라 로쿠로), 세리자와 코지 료 ( 세리자와 코지로), 주이치야 요시자부로(주이치야기 사부로), 요코미츠 이치(요코미츠리이치), 오자키 시로(오자키시로), 이후시 코지(이부세 스지), 마루야마 가오루(마루야마 카오루) ), 이시카와 아츠시 (이시카와 준), 미요시 타츠지 (미요타 츠지), 카와 카미 테츠로 (카와 카미 테츠로), 카미 니시 키요 (진자 이키 요시), 쿠세이 난초 (히사오 쥬란), 아베 토모지 (아베 토모지) ), 나카무라 구사다 남자 (나카 무라 쿠사 타오), 진보 코타로 (진보 코우 타로), 엔지 후미코 (엔치 후미코), 가토 楸邨 (카토 슈슨), 쓰무라 노부오 (츠무라 노부오), 이시다 하고 (이시다 하쿄) ), 타치하라 미치조(타치하라 미치조), 노무라 히데오(노무라 히데오), 나카무라 신이치로(나카무라 신이치로), 카토 슈이치(카토우슈이치) 등(생년순) 많은 문학자가 카루이자와를 방문해, 이 땅을 무대 한 작품도 남겼다.
제2차 대전 중에는 전쟁을 피하거나 자가가 재해를 입고 카루이자와와 아사마 산기슭 주변에 소개하는 문학자가 있었다. 마사무네 시라토리, 무로생 쇼세이, 엔지 후미코, 노가미 야요코(기타카루이자와), 키시다 쿠니(동, 노치 이이다), 카타야마 토시히코(카타야마 토시히코)(동, 노치아사과) 등이다. 노가미 야요코 ‘야마소키’와 사토 하루오(사토하루오)(요코네) ‘사쿠노 쿠사피리’, 다카하마 허코(타카하마 쿄시)(코모노) ‘코모리 잡기’ 등 소개 생활을 그린 작품도 태어났다.
전후부터 현재 문학자
제2차 대전 후에는, 그 때보다 많은 문학자가 카루이자와에 일장으로서의 별장을 가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기 문학자 외에 니시죠 야츠시(사이조야소), 요시야 노부코(요시야노부코), 유아사 요시코(유아사요시코), 츠바이 시게지(츠보이 시게지)·에이(사카에) 부부, 카와구치 마츠타로(카와구치) 마츠타로), 고토 시게루, 미요코 미요코, 이시자카 요지로, 이시자카 요지로, 아미노 키쿠, 유키 시게코, 고야마 이토코, 나카노 시게지 (나카시게하루), 요코미조 마사(요코미조세이시), 탄바 후미오(니와후미오), 토미타 죠오(토미타츠네오), 사타이나코(사이토코), 이시카와 타츠조(이시카와 타츠조) , 다나카 치요오 (타나카 치카오) · 스미에 (스미에) 부부, 야마무로 시즈 (야마무로 시즈카), 이노우에 야스 (이노 우에 야스시), 가사하라 묘코 (쿠즈하라 타에코), 노가미 아키라 (노가미 아키라), 나카사토 츠네코(나카자와 츠네코), 시라스 마사코(시라스 마사코), 오하라 토미에다(오하라 토미에), 요시다 켄이치(요시만이치), 겐지 치타(겐지케타), 시바키 요코(시바키 요시코), 코지마 노부오(코지마 노부오), 시바타 연사부로(시바타 렌자부로), 아사부키 등수자(아사부키 토미코), 호리타 요시에(호타요시에), 호타죠 마코토(호죠마마), 후쿠나가 타케히코(후쿠나가 타케히코), 카토 미치오 (카토 우미 치오), 수상 공부 (미즈카 미츠 토무), 아가와 히로유키 (아가와 히로 유키), 아쿠타가와 히로시 (아쿠타가와 히로시), 엔도 스쿠 작 (엔도 슈우 사쿠), 아베 공방 (아베코 우보), 츠지 쿠니 쿠 (츠지 쿠니오), 미야와키 슌조 (미야와키 센조), 키타 모리오 (키타 모리오), 야시로 시즈이치 (야시로 세이치), 기지마 시 (키지마 처음), 카가 오토히코 (카가 오토 히코), 키시다 가타코(키시다 에리코), 나다이다다, 타니가와 슌타로(타니카와 준타로), 요시하라 사치코(요시하라 사치코), 고토 아키세이(코우메이세이), 오에 겐사부로(오오켄자부로), 모리 즈코(모리요코) ), 모리무라 가쓰라(모리무라 가발), 미야모토 테루(미야모 토테루), 미즈무라 미묘(미즈무라 미나에) 등(생년순), 많은 문학자가 별장을 물고 동시에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낳았다.
그리고 오늘은 통신 수단의 발달이나 고속 교통망의 정비 등에 의해 정주하는 문학자(우치다 야스오(우치다야스오), 후지타 요나가(후지타 요시나가), 코이케 마리코(코이케마리코), 유카와 메구미 (유이 카와이) 등)도 늘고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